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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바이올리니스트 정상희 “연주자는 무대에서 배워야…깨닫게 해준 ‘인생 스승’ 닮고 싶어”

  • 작성일  2020-02-13
  • 조회수  4636

개교 200년 넘은 콧대 높은 음대 
아시아 여성 첫 부교수로 부임
“그 문화 한복판에 들어선 느낌” 

“한국 학생, 선생에게 종속 말길 
스승도 무서운 훈육 않았으면”
오늘 성남서 ‘국내 연주회’ 열어
 

 

오스트리아 빈은 ‘음악의 도시’로 불린다.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이 이 도시에서 활약했던 시대부터 유럽 음악의 중심지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좀 더 들여다보면 ‘음악의 도시’ 앞에 ‘보수적’이라는 수식어를 더 붙여야 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빈 혈통주의’는 어느 정도 흔들렸지만 ‘유럽 중심주의’는 아직 강고하다. 여성 차별이 존재함도 부정할 수 없다. 이 도시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빈 필하모닉은 여전히 여성 단원을 받아들이는 것에 인색하다. 아시아 출신 정단원은 한 명도 없다.

빈을 중심으로 활약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정상희(31)가 오는 3월부터 빈 국립음대 강단에 선다. 아시아 출신 여성이, 지난해 개교 200주년을 맞은 이 콧대 높은 음대에 바이올린 교수로 부임하는 것은 처음이다. 13일 성남 티엘아이 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국내 연주회를 앞두고 귀국한 그는 “여섯 명이 최종 후보로 올랐던 시니어 렉춰러(Senior Lecturer) 임용시험을 최근 통과했다”며 “이 직급은 프로페서(Professor) 바로 아래 단계”라고 밝혔다. 한국어로 옮기자면 ‘부교수’ 혹은 ‘조교수’에 해당하는 전임교원이다. 정상희는 빈으로 떠난 지 13년 만에 “그 사회, 그 문화의 한복판으로 들어선 느낌”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 과정이 녹록지 않았음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서울예고 3학년 때 빈으로 유학을 떠났어요. 독일어를 제대로 못해 무시당하고 상처받았던 기억들은 셀 수 없이 많죠. ‘칭챙총’(동양인 비하 표현)이라는 비아냥도 들었고, 조교 때는 노골적으로 차별적인 일부 교수들한테 스트레스도 받았어요. 독일어를 꽤 자연스럽게 구사하던 시점부터는 조곤조곤한 말투로 항의하곤 했죠.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그랬던 건 아니죠. 좋은 스승,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났어요.” 

‘좋은 친구, 좋은 스승’ 중에는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도 있다. 정상희가 첫손에 꼽은 빈 음악교육의 장점은 “자율적”이라는 점이었는데, “학사와 석사를 모두 거치면서 시험이 딱 두 번밖에 없다는 점은 거의 문화적 충격이었다”고 했다. “한국에서 학생들을 너무 엄하게, 다시 말해 훈육과 처벌 방식으로 가르치는 것, 빈번히 시험을 치르는 것과는 너무 달랐다”는 것이다. 자율적으로 공부하면서 학업과 연주 활동을 병행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마이스키를 만나 협연한 것은 “영광이고 행운”이었다고 했다.

“2010년 마이스키와 처음 협연했죠.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베토벤 3중협주곡을 했어요. 겨우 스물한 살 때였잖아요. ‘에이, 그냥 묻어가야지’라고 생각했죠(웃음). 민폐만 끼치지 말고 마이스키의 연주를 무난히 따라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연습을 하다가, ‘선생님, 이 부분에선 제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라고 물으면, 마이스키는 쿨하게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했어요. ‘에라, 모르겠다’ 생각하고, 진짜로 저 하고 싶은 대로 했죠. 그런데 놀랍게도, 마이스키가 모든 감정과 표현을 저한테 맞춰주시더라고요. 아, 황홀한 순간이었죠. 평소보다 몇 배 더 좋은 연주를 펼쳤어요.” 

정상희는 그때 “연주자는 강의실이 아니라 무대에서 배운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고 했다. 마이스키와의 인연은 이듬해에도 이어져 체코 체스키크룸로프에서 두 번째로 협연했다. 같은 무대에서 베토벤과 브람스 협주곡을 잇달아 연주하는 ‘빡센 연주회’였다. 그때도 마이스키는 유머를 툭툭 던졌다. “상희, 너는 브람스 2중협주곡을 지금까지 몇번 해봤니?” “저… 몇번 했는데요.” “그래? 나는 이번이 80번째란다.” 한데 연주회에서 ‘작은 사고’가 일어났다. 브람스 3악장에서 첼로의 C현이 툭 끊어졌다. 그래도 마이스키는 ‘대가’의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는 그저 빙그레 웃으면서 앉아 있고, 정상희와 오케스트라만 연주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마이스키와 함께했던 두 번의 경험은 정말 최고였어요. ‘함께해서 영광이었습니다’라고 인사를 드렸더니, 마이스키가 말했어요. ‘그 영광은 브람스의 것이지!’ 지금 생각해도 적확한 말이에요. 연주자는 자칫 작곡가라는 본질을 잃고 ‘나’한테 도취될 수 있으니까요. 마이스키는 인간적이고 솔직한 분인데, 툭툭 던지는 한마디에 굉장히 큰 의미를 담곤 했어요.” 

‘한국에서 바이올린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조언’을 주문했다. 약간 망설이더니 “최대한 국제적 안목을 키울 것, 선생에게 너무 종속되지 말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가르치는 이들에겐 무슨 말을 하고 싶냐’고 묻자, 역시 망설이다 답했다. “무섭게 가르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에게 무대에 대한 공포, 음악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해요.” 

정상희는 연주회에서 슈베르트의 소나티네 1번 D장조, 비에냐프스키의 ‘구노의 <파우스트> 주제에 의한 화려한 환상곡’, 포레의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를 연주한다. 리투아니아 출신 피아니스트 베로니카 코프요바가 함께 연주한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2122053015&code=960313#csidxee5bd7401e85cfdab40cd70aa499bf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