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인이래. 그것도 여자애.” 1989년 11월 미국 뉴욕 링컨센터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수군거렸다. 요절한 미국의 천재 피아니스트 윌리엄 카펠을 기리는 국제 콩쿠르 우승자에게 특전으로 주어지는 독주회였다. 이전 3년간 콩쿠르 1위가 공석이었기에 관심이 더 집중됐다. 담담한 표정으로 피아노 앞에 앉은 ‘동양 여자애’의 연주는 객석의 호기심을 감탄으로 바꿔놨다.
피아니스트 백혜선(54·사진)의 첫 국제무대였다.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은 그를 전화로 만났다. 백혜선은 지난해부터 자신의 모교인 미국 뉴잉글랜드음악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보스턴에 머물고 있다. “방학인데 각종 페스티벌과 뮤직캠프에서의 레슨으로 더 바쁘다”는 그의 목소리는 현지시간으로 자정이 훌쩍 넘었는데도 생생했다.
전석 매진에 미국 유력 일간지의 호평을 받은 백혜선의 ‘첫 무대’는 위암 투병 중이던 그의 아버지가 관람한 ‘마지막 공연’이었다. “‘여자가 무슨’이라며 유학을 반대했던 아버지가 연주회를 보러 오셨죠. 연주회가 끝나고 비로소 저를 인정하셨어요.”
3개월 뒤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데뷔 이듬해 리즈콩쿠르 5위, 1991년엔 퀸엘리자베스콩쿠르 4위에 올랐다.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인 퀸엘리자베스에서 상위 입상한 한국 최초의 피아니스트였지만 국내 반응은 잠잠했다.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은 1994년 서른 살을 앞두고 ‘마지막’이라고 되뇌며 출전한 차이코프스키콩쿠르였다. 백혜선은 1위 없는 3위를 차지했다. 1974년 정명훈(피아노 2위) 이후 20년 만이었고 한국 국적으로는 첫 입상이었다. 그 결과는 진로에 관한 오랜 고민에 마침표를 찍어줬다.
“피아노 연습을 하면서도 앞으로 뭘 하면서 살아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었어요. 미국 통신회사에서도 일해봤을 정도니까요.” 차이코프스키콩쿠르 입상으로 주목받자 서울대에서 교수직을 제안했고, 그는 이듬해 ‘최연소 서울대 음대 교수’가 됐다.
하지만 그는 2005년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연주에 집중하겠다”며 돌연 ‘미국행’을 선언해 다시 한 번 화제를 모았다. 백씨는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너무 쉽게 주어진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컸다”며 “예술가로 한 단계 더 성장하고 진정한 연주자로 인정받으려면 그런 훈장을 달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세계 무대에서 연주력, 오로지 실력만으로 인정받고 싶었다고 했다. ‘1년에 30일 이상 해외에 체류하면 안 된다’ 같은 당시 학교 측의 활동 제약도 그를 답답하게 했다. 많은 경험을 하고 연주 경력을 쌓아야 학생도 더 잘 가르칠 수 있는데 점점 ‘고인물’이 돼가는 것 같았다.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떠난 길은 고난의 시작이었다. 그는 “가장 힘든 시기고 고비였다”며 “하지만 덕분에 가야 할 방향을 찾고 연주를 통한 공감대도 넓혀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맞은 데뷔 30주년에 그가 선택한 것은 “꼭 한 번은 넘어야 할 산”인 베토벤 소나타와 협주곡 전곡(全曲) 연주다. 지난해 총 연주 기간 ‘2년 반’을 잡고 대장정을 시작했다. 그는 “베토벤은 역경을 극복하려는 에너지와 용기, 자신에 대한 도전을 음악으로 승화했다”며 “그 엄청난 정신의 힘 앞에 늘 겸허해진다”고 말했다.
오는 27일 ‘베토벤 전곡 사이클’ 연주의 일환으로 경기 성남시 티엘아이아트센터에서 베토벤 소나타 1번과 2번, 16번과 18번을 연주한다. 백혜선은 “2번과 16번, 18번은 미묘하게 비슷하면서도 다른 곡”이라며 “여름이니 조금 발랄한 곡을 통해 우아함 속에 숨어 있는 베토벤의 유머감각을 관객과 함께 즐기고 싶다”고 말했다. 올 12월에는 서울 신천동 롯데콘서트홀에서 피아노 소나타 29번과 31번, 내년 5월엔 2번, 5번으로 전곡 연주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을 계획이다.
“대가들의 전성기는 60~70대”라고 말하는 그이기에 아직 갈 길이 멀다. 그가 생각하는 대가는 “연마를 거듭해 군더더기가 사라진 경지”다. “20대엔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기 바쁘죠. 30대엔 그것들이 어긋나고 40대엔 무너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50대에 이르면 깨우치게 됩니다. 주어지는 대로 살면 되는 걸. 연주도 그래요. 왜 그렇게 멋을 부렸을까. 뭘 그렇게 조몰락댔을까. 악보에 다 적혀 있는 걸. 악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되는데 말입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