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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 열린음악회로 독학한 바리톤 김기훈 '21세기 카푸칠리' 꿈꾼다
- 작성일 2021-06-14
- 조회수 3677
7월8일 티엘아이아트센터 독창회..최애곡 중심 다채로운 곡 선사
#열정1. 바리톤 김기훈이 처음 성악을 시작한 것은 고3 때다. 원래 고1 때까지는 공부만 했다. 학교 선생님과의 마찰로 한동안 방황하면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했다. 어릴 때부터 KBS ‘열린음악회’를 보며 성악을 따라 하는 걸 좋아했다. 비록 수박 겉핥기식 흉내내기지만, 첫 스승이 TV 음악프로그램이었던 셈이다.
마침 교회 성가대 활동을 했는데 우연히 한 교수의 눈에 띄었다. 김기훈은 “그 교수님이 제 노래를 듣고는 어떻게 배우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잘 하느냐”라며 “그날부터 저희 부모님을 쫓아다니며 ‘이 아이는 성악을 시켜야한다’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당연히 부모님의 반대는 엄청났다. 음악은 나중에 교양으로 하면 된다며 적극적으로 말렸다. 김기훈은 “하지만 정작 음악적 재능은 부모님께 물려받은 것 같다. 아버지는 공인중개사고 어머니는 주부다. 그래도 음악적 끼가 많으셨다. 어려서 동네 피아노학원에 다니게 한 것도 부모님이다. 결국 아버지와 담판을 지었다. 전문가에게 테스트를 받아서 훌륭한 성악가가 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나오면 성악을 하고, 아니면 안 하기로 했다. 다행히 될성부른 떡잎이라는 판단을 받았다. 그게 딱 열여덟 살 고3 때 일이다”고 설명했다.
#열정2. 늦깎이로 노래를 시작해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전남 곡성 출신의 김기훈. 고3 겨울방학 무렵 성악을 시작한지 3개월 만에 도전한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며 단박에 눈길을 끌었다. ‘뛰어난 소리를 가졌다’는 평가를 받으며 연세대 음대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독일 하노버 음대 석사를 마친 후 현재는 동 대학 최고연주자과정에 재학 중이다.
동아음악콩쿠르, 성정콩쿠르, 수리음악콩쿠르 등 유수의 콩쿠르를 석권하며 국내에서 탄탄하게 입지를 다져온 그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와 뤼벡마리팀 국제성악콩쿠르에서 잇따라 우승을 거머쥐며, 독일 명문 오페라극장인 하노버 슈타츠오퍼 솔리스트로 활동했다.
세계무대에서 김기훈 이름 석자를 뚜렷이 각인시킨 것은 지난 2019년.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와 오페랄리아(도밍고 국제성악콩쿠르) 결선무대에서 폭발적인 카리스마와 매력적이고 품격 있는 음악을 선보이며 준우승을 거머쥐었다.
특히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2위로 호명될 당시 ‘김기훈이 1위가 아닌 것’에 대해 객석에서는 불만이 표출됐다. 경연 장소였던 마린스키 극장의 관계자들 역시 ‘누가 봐도 명백한 1위’를 수상하지 못한 것을 믿을 수 없다며 김기훈에게 직접 전화를 해 아쉬워했다는 후일담이 전해진다.
김기훈은 “결과는 아쉽지만 큰 무대에서 매우 값진 경험을 했다”며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차이콥스키 콩쿠르 수상자 갈라콘서트에서 부른 오페라 <스페이드의 여왕> 중 ‘Ya vas lyublyu(당신을 사랑해)’ 영상은 “러시아인보다 더 러시아인 같다” “최고의 바리톤” “압도적이다”라는 찬사를 받으며 유튜브 조회수 10만회를 기록했다.
#열정3. 20세기 최고의 가수로 베르디 오페라 중 무려 17개의 역할을 소화할 수 있었다는 ‘베르디안 성악가’ 피에로 카푸칠리. 김기훈은 탁월한 호흡 조절과 유연한 레가토가 일품인 카푸칠리를 ‘가장 닮고 싶은 성악가이자 음악적 영감을 얻는 최고의 아티스트’로 꼽는다. 유럽 오페라 무대의 거장 카푸칠리와 떠오르는 태양 김기훈은 비교적 늦게 성악을 시작했지만 빠른 시간 안에 세계무대를 사로잡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베르디의 걸작 <라 트라비아타>에서 여주인공 비올레타와 사랑에 빠진 아들 알프레도를 회유하기 위한 아버지 제르몽의 노래 ‘Di provenza il mar il suol(프로벤자 내 고향으로)’과 <맥베스>에서 광기에 사로잡힌 맥베스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며 회한에 찬 심정으로 부르는 ‘Perfidi!...pietà rispetto amore(연민도, 명예도, 사랑도)’는 김기훈의 장점을 극대화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레퍼토리다.
그는 두 아리아를 통해 극으로 치닫는 인물의 감정을 자신만의 깊고 섬세한 감성으로 풀어내며 세계적 성악가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폭발적인 에너지와 뛰어난 음악성, 고급스러운 표현력은 세계 성악계가 21세기 오페라 무대를 장악할 주역으로 김기훈을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처럼 음악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을 쏟아내고 있는 김기훈이 절정의 무대를 선보인다. 오페라 아리아부터 한국가곡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곡을 선사한다.
김기훈은 오는 7월 8일(목) 오후 8시 티엘아이 아트센터에서 독창회를 연다. 이제 막 30대에 접어든 그의 벨벳 같고 기품 있는 목소리가 피아니스트 정태양의 반주에 맞춰 아름답게 흐른다.
그는 겸손하다. 세계무대는 자신의 기량을 뽐내는 곳이 아니라 배움의 터전이라는 확고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탄탄하고 질 좋은 소리가 저의 강점입니다. 하지만 선천적 재능에만 기대면 퇴보합니다. 매일 견문을 넓히면서 더욱 더 작품에 젖어 들기 위해 공부해야 합니다. 음악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합니다.”
국제콩쿠르를 휩쓸고, 정상의 무대를 섭렵하며, 유수의 오페라극장 주역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스타 성악가임에도 언제나 배움의 자세로 많은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김기훈은 “이번 리사이틀은 관객과 가까이서 호흡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라며 “완성도 높은 공연을 위해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프로그램에 많은 공을 들였다. 빠지면 섭섭할 최애곡인 베르디의 ‘Di provenza il mar il suol’과 ‘Perfidi!...pietà rispetto amore’을 넣었다.
그리고 코른골트 <죽음의 도시> 중 ‘Mein sehnen, mein wähnen(나의 그리움이여, 나의 망상이여)’, 바그너 <탄호이저> 중 ‘O du mein holder Abendstern(오 나의 성스러운 저녁별이여)’, 레온카발로 <팔리아치> 중 ‘Si può?(신사 숙녀 여러분?)’를 들려준다.
러시아 가곡과 독일 가곡도 기대된다. 차이콥스키의 ‘돈 주앙의 세레나데’ ‘오직 고독한 마음뿐’, 볼프의 ‘Verborgenheit(은둔)’ ‘Prometheus(프로메테우스)’를 연주한다.
아름다운 우리 시에 선율을 붙인 ‘그리운 마음(이기철 시·김동환 곡)’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서정주 시·김주원 곡)’의 한국 가곡도 노래한다.
티켓은 4만원이며, 인터파크·예스24·11번가에서 예매할 수 있다.
데일리안 민병무 기자 (min66@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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